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이라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네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 반,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가난의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열어보니 제가 알고있었던 사당동은 그 사당동이 아니었고, 의무감으로 읽어내기에는 심정적으로는 너무 멀고 거리적으로는 너무 가까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동국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친 학자로, 이 책은 1986년 유니세프의 지원을 받아 도시 철거민의 삶을 조사하는 연구로 사당동 지역의 몇몇 가정과 인연을 맺어 2012년 교수 정년 퇴임을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그들을 관찰하며 적어 내려간 기록입니다. 책을 읽으며 관찰 대상이었던 주민들이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동네에서 지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으로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읽을 때엔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만, 25년이라는 장기간의 관찰일지라는 양적인 압도감이 조지 오웰을 뛰어넘어버립니다.-물론 문학적 가치 면에서는 조지 오웰이 앞서겠지만 말이죠. 사당동 시절 어린 아이였던 관찰 대상들이 사당동을 떠나 결혼해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모습까지 기록하며 20-21세기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환경에서 가난이 어떤 식으로 대물림을 하는지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주로 대담, 그리고 관찰 일지로 되어있으며 수년전 [사당동 더하기 22]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책의 부록으로 DVD가 들어있습니다- 3년간의 추가 관찰과 자료 정리를 통해 책으로 출판된 것이라네요.
저자는 오스카 루이스라는 사회학자를 여러 곳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그가 주장한 '빈곤문화'에 대해 언급하며 가난이 이 빈곤문화에 의해 대물림된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며 시스템적으로 가난이 재생산되는 것이며 빈곤문화는 빈곤이 낳는 결과물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준의 방대한&심층적 연구가 이루어졌고, 또 책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담겨있는 내용 또한 놀랍습니다.
덧글
CelloFan 2016/06/09 10:36 # 답글
bonjo 2016/06/09 2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