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 움베르토 에코 / 이세욱 역 ▪ Books


책 소개를 읽어봐도, 리뷰들을 접해봐도 어떤 내용의 소설일지 영 가늠이 안되는 책이 있다면 이런 책이겠지요. 거꾸로 소개글을 쓰려할 때, 스토리 라인으로 설명을 하려해도 어렵고 주요 소재가 되는 "유대인 장로들의 프로토콜"로 설명을 하려해도 어렵습니다. 뭐 생각해보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같아요. 추리극 성격이었던 "장미의 이름"정도를 제외하면 말이죠.

그렇다고 뭐가뭔지 모르겠는 것은 아닙니다. 읽고 나면 깊은 인상과, 교훈이라고 하기엔 좀 더 규모가 큰, 엄청난 지식? 지혜?에 기대어 서있다가 페인트가 묻어난 것같은 지적 끈적임이 남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의 단초를 제공해준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라는 문서가 어떤 방식으로 생성되었는지, 서류 조작 전문가 시모니니라는 가상의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들려주고있습니다. 권말 해설을 보면 시모니니라는 가상인물을 제외하고는 언급되는 모든 인물, 지명, 사건, 대화 등은 실제 역사에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니, 시모니니가 장로의 프로토콜을 작성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실제 어떤 방식으로 그 문서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메커니즘은 정확히 보여준다고 하겠지요.

이 소설에서 시모니니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사람들이 환영할만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의 욕구와 실제 사실관계 위에 약간의 거짓정보를 가미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춘, 모두가 믿어버리는, 혹은 모두가 거짓이라 눈치를 채도 상관없는 '가짜 사실'이 탄생한다는 것이죠.

실제 '장로들의 프로토콜'은 세상에 회자된 이후 얼마 되지않아 조작된 가짜 문서임이 밝혀졌으나 그 내용이 사실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유대인 혐오자-들에 의해 사실인양 지속적으로 인용되고 이용된다는 것이죠. 이런 방식의 거짓말들은 어느 개인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판단할 때, 혹은 정치적인 세력다툼 속에서 공공연히 이용되고 발견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생각난 것은, 당시의 유대인 혐오와 한국의 지역감정(정확히 말하면 호남 혐오)이 어찌 그리 닮은꼴인지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유대인들을 '프리메이슨-사탄숭배'와 연결시켜 큰 틀을 만들어내는 것은 호남인들을 '빨갱이'로 연결시켜 혐오감을 단순화시키는 방식과 판박이입니다.

소설속에서 이러한 거짓말들은 정보기관의 주문에 의해 생산되고 권력에 의해 소비되는데요, 최근 국정원 지시하에 유명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여론몰이를 시도했던 일이라든지, 권력/정치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거짓들을 생산 유통하는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팩트 더하기 약간의 악의적 상상력". 그리고 맹렬한 소비. 이러한 거짓에 휘둘리는 것은 멍청한 것과 관계없는, 의도적인 거짓말의 생산과 소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건, 정보 접근성이 좋아지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답답한 역사속의 이야기이고, 주인공이 악당인 터라, 책을 덮는 순간까지 좋은 꼴은 보지 못합니다만, 지적 유희랄까, 추함의 미학이랄까. 결코 불쾌하지만은 않은,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덧글

  • 이요 2013/05/18 13:27 # 답글

    책 소개를 읽어도, 리뷰를 읽어도 모르겠더니 이 리뷰를 보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bonjo 2013/05/20 11:00 #

    감사합니다. ^^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