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의 형식은 실제 인물들을 내세워 가상의 상황속에 넣어 가상의 대화를 나누게 하는 형식입니다. 그런 형식을 채워내려면 그 실제 인물들에 대한 세심한 고찰이 없고서는 이름만 빌리게 되든가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될텐데, 그런 비평은 없는 것을 보니 테리 이글턴의 경우 훌륭하게 해낸 듯합니다. 그리고 다른 책들을 봤을 때도 테리 이글턴이 그리 허술한 사람은 아니죠. 잘 모르는건 아예 이야기도 꺼내지 않을 그런 스타일.
등장인물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누구인가 싶은 러시아 망명학자 니콜라이 바흐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제임스 코널리입니다. 이야기의 전반은 등장인물의 배경(?)설명-이 부분은 실제-에 해당되고 중간쯔음 이들이 아일랜드 외딴 해변의 오두막에서 만나면서 본편-대화-가 시작됩니다.
제임스 코널리는 권력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순수한 혁명가로서 혁명에 대한 철학을, 비트겐슈타인은 이상적 철학 이론에 신물이 나 학교로부터 도망쳐나온 현실적 철학자로서 대화를 나눕니다. 니콜라이 바흐친은 그 사이에서 혁명으로 퇴출된 인물의 자리를 맡습니다.
주인공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한 독서라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제임스 코널리의 입장과 주장은 먼저 읽었던 [마스크스가 왜 옳았는가]에서 다뤄진 테리 이글턴의 혁명론과 부합되는지라 쏙쏙 이해가 되었는데 말이죠. 역시 심하게 똑똑한 사람들이 쓰는 책은 기초 지식이 탄탄해야 이해가 가능하다는 교훈을 다시 되새겼고;; 이 기회에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제임스 코널리가 성자, 비트겐슈타인이 학자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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