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 이현경 역 ▪ Books

아우슈비츠라는 단어는 무척 익숙한 명칭이면서도 그곳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익숙한 만큼까지는 알지 못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영화들에서 묘사되기는 합니다만 그곳의 생활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반 파시스트 운동에 가담하다가 체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러시아군에 의해 해방되기까지 약 1년간 아우슈비츠의 삶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짧은 기간입니다. 실제 글 중에는 3년 이상 그곳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그러나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의 생존률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1년이건 10년이건 전해지는 '사실'의 무게는 다름이 없다 생각합니다.

모든 수용소의 모든 규칙과 정책은 수감자들의 개성과 인격을 지워버리기 위해 정해지고 철저하게 강요되어 반항할 생각조차, 어쩌면 자살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만듭니다. 수감자들이 독일군을 직접 마주칠 기회조차 없다는 사실은 분노의 대상 조차 희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동료 수감자들의 죽음조차 무감각해져버리는 '비인간'이 되어버리는거죠.

수감자들 뿐 아니라 수감자들을 억압하고 심지어는 가스실로 운반하고 죽이는 과정에 동참하는 독일군들조차 잘 짜여진 시스템 속에서 그 시스템이 얼마나 악독하고 비인간적인지 인식하지 못한채 생존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공 지옥을 만들어낸거죠.

저자는 감정이 배재된 건조한 문체로 그곳의 삶을 정확히 자기가 보고 겪은 사실만으로 묘사해갑니다. 수감자가 다른 수감자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첫인상으로는 '뭐야 몹시 굶주리고 많이 불편할 뿐 살만하네'라고 인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자와 함꼐 이송된 90여명의 이탈리아 포로의 숫자가 두번째 겨울이 시작되는 무렵 1년이 안되는 사이에 20명 정도로 줄었다는 묘사를 보는순간 그곳의 무서움을 알게 되지요. (그 20명조차 마지막 이송 과정에서 대부분 죽습니다)

본문에서 철저하게 제어된 저자의 의견이나 감상, 아우슈비츠에 대한 자료 등은 독자들과 Q&A를 나누는 형식으로 수록된 부록에 묘사되어있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이, 구소련의 정치범 수용소와 비교하는 QNA 부분이었는데 악명으로 따지면 비슷한 인상일런지 몰라도 수용소의 목적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라는 곳이 역사상 매우 특별한 곳이지만 세상에 전체주의라는 망령이 있는 한 언제든 아우슈비츠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입 듭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라 인간들의 머릿속에서 나오고 인간들의 손에 의해 자행된 비극이니 말이죠.

[취서만필]을 읽다가 구입하게 된 책입니다. 이것으로서 취서만필 수록 도서 중 1차 구입분은 다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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