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딩때였나, 고딩때였나. 일주일에 한 번 TV에서 김광한씨가 최신 해외 음악을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주로 팝이었고 가끔씩 생소한 락 밴드들을 소개해줘서 전영혁 씨의 라디오 프로와 함께 락 키드들의 좋은 정보 창구가 되었었죠. 저의 베스트 밴드인 Rush를 알게 된 것도 그 코너를 통해서인지라 아주 고마운 프로입니다.
Zebra라는 밴드를 처음 접한 것도 그 코너를 통해서였습니다. 3인조 락밴드라 하면 아주 흔한 포멧이 아니면서도 또 그리 드문 포멧도아닌데, 당시 보여준 뮤비의 곡은 Triumph와 분위기가 매우 흡사했습니다. 서양인은 다 비슷하게 보이던 어린 시절, 기타 치며 노래하던 리더의 모습이 Rik Emmett와 외모가 비슷하게 보였고 밝고 경쾌한 곡에 보컬 음색도 Rik Emmett와 묘하게 비슷했습니다. Triumph와 비교하자면 꽤나 스트레이트했던지라 Triumph의 스트레이트 버전(?) 정도로 인식을 했지요. 아무튼 기억에 깊이 남은 뮤비였습니다. 국내에 정식으로 앨범이 발매되지는 않았고, 그래서 그냥 아쉬운, 밴드 중 하나로 기억되고 말았지요.
20년이 넘게 시간이 흘러 Dream Theater의 앨범 [Black Clouds & Silver Linings](2009)이 발매되면서 보너스 디스크의 커버곡 리스트에서 Zebra의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됐는데요, 사실 좀 놀랐습니다. 어릴 적 봤던 뮤비 속의 Zebra라는 밴드 이미지와 DT와는 교집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거든요. 곡 리스트에 그렇게 놀라고, 발매된 앨범을 들으며 Zebra가 이런 음악도 했어? 하고 또 놀라고, 뒤늦게 앨범을 구해 들으며 다시 한번 놀라고 있습니다.
모든 곡들이 DT가 커버한 'Take Your Fingers From My Hair'와 같이 러닝타임이 길지는 않습니다만, 한 곡 한 곡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확실히 Rush나 Triumph의 진보적인 분위기와 꼭 닮아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곡들 속에 다양한 스타일의 기타를 정교하게 꾸겨넣은 기분좋은 모양새는 Rik Emmett의 장인정신을 연상하게 되고 거침없이 전조/변박하며 곡을 몰고 나가는 진취적인 분위기는 70년대의 아트락에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이 팀의 결성이 1975년이고, 데뷔 음반이 1983년이니 정식 데뷔가 좀 늦은 편입니다. 유튜브에 1978년 데모 음원이라고 올라와있는 'Take Your Fingers From My Hair'를 들어보면 정규 음반에 수록된 버전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데, 데뷔 기회를 너무 늦게 잡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1983년이면 '아트' 분위기의 음악의 끝물이자 스트레이트하고 좀 더 단단한 헤비메탈 음악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다른 앨범들을 접해보지 않아 이들의 음악적 역량이 실제로 어느정도일런지 가늠은 안되지만 이 앨범에서 보여준 역량이 꾸준이 발휘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데뷔 시기만 맞았으면* Rush나 Triumph 정도와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정규앨범은 모두 넉 장인데, 데뷔앨범과 2003년에 발매된 4집이 비교적 구하기 손쉬운 편이고 2, 3집은 합본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만 절반상태인지 가격이 좀 황당하게 높네요...-.-;;; 이 데뷔 앨범은 어느 용감한 수입업자가 YES24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중입니다.
Take Your Fingers From My Hair
앨범 버전이 아니고 78년 데모버전이라는데 앨범버전과 크게 차이 없습니다.
이때 데뷔를 했어야 하는건데 말이죠.
Wait Until The Summer's Gone
이 곡은 1984년의 2집에 수록된 곡인데, 김광한 씨가 소개해준 뮤비가 이것이었네요.
제 기억속 노래보다 훨씬 강력한 락이군요 ^^;;;
* Rush의 데뷔가 1974년, Triumph가 1976년 입니다.
덧글
여행 2011/06/14 13:41 # 답글
노래 좋아요^^
bonjo 2011/06/14 13:52 #
전영혁씨도 자기 프로 갖기 전에는 황인용 씨 프로에서 고정 게스트였죠? (기억이 가물가물)
음반도 발매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
gershom 2011/06/15 16:47 # 답글
저 체크무늬 체스판..하이톤 보컬..
20년이 훨씬 넘었군요.. ㅜㅜ
bonjo 2011/06/15 17:38 #
Django 2012/06/22 13:35 # 삭제 답글
라이센스 LP를 현재까지도 소장하고 있는 앨범입니다 !
(물론 턴테이블이 없어서 듣지는 못하지만요...^^;;;)
정말 이상한(?) 음악을 들려준 독특한 음반이었지요^^
이 글을 보고 MP3로 간만에 다시 들어보니 어떤 뭉클한 감정마저 느껴지네요 ^^
bonjo 2012/06/22 20:53 #
음악이 꽤 괜찮은 편이었는데 타이밍이 별로 안좋았던 것같습니다.
당시로선 Rush나 Triumph의 아류쯤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