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 - 헌터 S. 톰슨 / 장호연 역 ▪ Books


이 책을 왜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 초판이 2010년 6월인 것으로 볼 때 온라인 서점의 오프닝 화면에서 홍보문구를 보고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별 생각 없이 구매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책을 1/3가량 읽었을 때까지도 이게 픽션인지 넌픽션인지 구분을 못하고 읽고 있었을 정도로 사전 정보라든지 이해 없이 읽어갔습니다.

이 책은 1970년대 초 기자인 주인공과 그의-친구이자- 변호사가 취재차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기승전결 식의 특별한 줄거리는 없습니다. 그냥 사건들이 나열될 뿐입니다. 특징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은 각종 마약에 쩔어있다는 것입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약물에 쩔어 차를 운전하고 사람들을 희롱하고 거짓말을 하고 호텔 방값을 떼어먹고 달아나고 아주 개판 오분전. 읽다보면 내가 지금 아무 의미 없는 이 개망나니 짓을 왜 읽고 있어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의미없는 광기와 어처구니없는 민폐의 연속입니다.

이쯤 되면 본론을 떠나 책을 구석구석 살피고 역자 후기나 그에 준하는 글을 찾아봐야죠. 다행히도 책 말미에 작가 노트가 수록되어있습니다. 작가는 개인의 자유를 표방하는 히피 문화의 붕괴와 닉슨의 관료주의 파시즘에 저항하는 의미로 이 여행(글)을 기획한 듯 합니다. 딱부러지게 이 소설은 이러한 의도로 쓴 것이다 라고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당시의 상황,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태도는 확실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속의 과격한 일탈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의 입으로 "미친 모험" "횡설수설"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니까요.
이들의 이 도를 넘는 일탈이 무엇을 향하는지는 이야기의 후반에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이것도 반 농담식의 언급입니다만, "아메리칸 드림을 찾고있다"고 표현합니다. 주인공들의 이 과격한 일탈은 우스꽝스럽고, 짜증나고, 욕지기가 나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허무하고 슬픈 몸부림인 것이죠.

어쩌다보니 앞서 읽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선명히 대비되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영국과 1970년대 미국이라는, 각각 어떤 한계에 부딛힌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조지 오웰이 관찰자 입장에서 가장 가난한 빈민들의 중심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삶을 느끼고 그 상황들을 개선해낼 방법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면, 헌터 S. 톰슨은 미국의 가장 화려한 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 과격한 침입자의 모습으로 정면충돌을 해버립니다. -책의 원래 부제가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으로 떠나는 야만적 여행]A Savage Journey To The Heart Of The American Dream입니다.- 표현하는 방법은 정 반대이지만 화자가 속한 사회의 아픔을 느끼며 내가 속한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된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느낌을 갖게됩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를 연달아 읽고 나니 2010년 대한민국을 이런 식으로 콕 찝어 정확히 볼&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줄만한 책은 없을까 하는 궁금증+아쉬움이 생깁니다.

1998년 조니 뎁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군요.


"내면의 악마와 세상의 흉흉한 분위기에 대해 톰슨이 쓰고 있는 공포와 혐오는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는 한때 높은 이상을 가졌지만 가혹한 미국 현실의 장벽을 만나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세대의 대변인이다." - [롤링스톤]




덧글

  • gershom 2010/09/06 13:44 # 답글

    장호연씨가 번역했군요.. 에릭클랩튼 자서전과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러운 죽음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요즘엔 책을 고를때 저자도 저자지만 역자도 살펴보게 되네요..
  • bonjo 2010/09/06 16:27 #

    군데군데 단어 선택이 어색한 부분이 있긴 했는데,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번역이라 느꼈습니다.장호연이라는 분은 음악 관련 번역 전문가인가봐요. 이 책에도 이런 저런 팝 음악들이 소도구로 나오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석이 정성스럽게 달리더라구요.
  • gershom 2010/09/06 17:45 #

    예, 아마 음악에 관한 책들을 전문으로 번역하시는 것 같더군요.. 초창기에 번역한 책은 좀 아니다 싶었는데 위의 두 책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도 왠지 관심이 가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
  • bonjo 2010/09/06 21:24 #

    생각해보니 [뮤지코필리아]도 장호연씨 번역이었네요. ^^

    이 책은 딱히 권해드리기가 좀 거시기 합니다. 저야 마친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은 직후였고 본전 생각에 미간에 힘좀 줘가며 읽어 그럭저럭 재미를 느꼈습니다만, 작품 자체에서 의미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작가 노트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서야 겨우 납득할 수준이었거든요.
    이 책이었던가 영화였던가 리뷰를 보니 '당시의 미국 문화를 알고 봐야 이해가 될것'이라고 코멘트를 하고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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