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에 이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중 세 번째로 읽게된 책입니다. 모레아는 펠로폰네소스의 다른 이름으로 그리스 반도의 남부 지방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리스인 카잔차키스가 자기 조국을 여행하며 쓴 기행문인 것이죠.
책의 서두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얼굴은 열두 번씩이나 글씨를 써넣었다가 지워 버린 팰림프세스트이다. 석기시대, 에게 해 시대, 미케네 시대, 도리스 중간시대, 고전시대, 헬레니즘 시대, 로마시대, 비잔틴 시대, 프랑크족의 침략기, 터키인의 강점기, 1821년의 그리스 독립운동기, 현대."카잔차키스는 이것을 '열두 겹의 무덤'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여행중 만나는 풍광, 유적, 그곳에 살고있는 그리스인들이 건네는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서, 그리스를 그리스로 지탱하는 역사와 사상과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영국 기행]이나 [일본, 중국 기행]에서 보여준 자유에 대한 갈망 혹은 이질적 문명에의 호기심과는 층위가 다른, 민족적 자존감이 담뿍 담겨있는 좀더 구체적인 고뇌이고 갈등입니다. 카잔차키스의 이 고뇌는 읽는이의 마음조차 움직여 마치 그리스가 나의 조국이고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된 듯 착각하게까지 만듭니다.
역자 후기를 보니 [모레아 기행]은 다른 기행문들과 달리 수차례에 걸쳐 행해진 여행의 이야기를 모은 성격의 책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떄문에 그 깊이가 그가 쓴 다른 기행문들에 비해 한층 깊을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카잔차키스의 행적을 살펴볼 때 적어도 여섯 번의 모레아 여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여행들은 모두 그의 작품들을 위한 자료수집 성격을 띄며 어떤 대화 혹은 인물들은 작품속에 그대로 인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카잔차키스의 작품은 기행문 빼고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한번 읽어본 것이 고작인데, 너절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두 군데에서 대화가 인용된 것을 발견했을 정도이니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꼼꼼히 기억하고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행문을 읽는 재미가 더욱 각별할 듯 합니다.
[영국 기행]을 읽을 때는 무척 힘겨웠고, [일본, 중국 기행]을 읽을 떄는 뭔가 좀 이해가 된다 싶었는데, [모레아 기행]은 꽤나 즐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열린 책들에서 출판한 카잔차키스 전집 중 이제 기행문은 러시아, 지중해, 스페인 세 권 남았군요.
덧글
sunjoy 2010/04/13 21:43 # 삭제 답글
bonjo 2010/04/13 23:12 #
저도 언제 안소니 퀸의 조르바를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네요 ;;
그래도 조르바 하면 안소니 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지 조르바를 읽는 내내 그 얼굴이 떠오르고 -이름은 모르겠는데- 안소니 퀸 전문 성우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