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묵자 - 기세춘, 문익환, 홍근수 ▪ Books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묵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에 이은 연쇄 독서입니다. [묵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을 읽으며 묵자 사상에 담겨진 종교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목부터 그쪽을 향했을 법한 이 책을 골라봤습니다.

저자 세 분은 통일운동가라는 공통점을 갖고있으며 기세춘은 동양 사상에 관한 책을 여러권 집필한 학자이고, 문익환, 홍근수는 개신교 목사이면서 보안법 관련으로 옥고를 치른 진보 인사들로 보수 교단에서는 가짜 목사 혹은 이단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는 분들이지요. 기세춘 선생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으며 아 이런 분이구나 싶었는데,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이면서도 그 속에서 사회주의 공동체 모델를 발견해내는 개혁정신이 가득한 분이네요. 이분이 묵자에 심취하여 공산 공동체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인지 워낙 성향이 그런 분이 묵자를 만나게 된 것인지 선후 관계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기세춘 선생에 있어서 묵자는 단순한 연구의 대상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문익환, 홍근수 두 사람이 기세춘 선생의 [묵자]를 읽고, 그 책의 내용 중 예수와 묵자를 비교한 부분에 관하여 편지를 주고받은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근수 목사가 기세춘 선생의 견해에 대한 반박글을 쓴 것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토론의 발생지점이 된 기세춘의 저서 [묵자]의 요약본(?)이 책의 서두에 실려있어 이어지는 서신들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요약본이라고 해도 1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며 묵자의 원전이 상당분량 인용되어있어 오히려 먼저 읽은 [묵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기술]보다 묵자에 대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래 1994년에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것이 2009년 가을께 다시 발간되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묵자에 관한 개요는 기세춘 선생의 글로 자세히 설명이 되어있는데 예수에 관한 설명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묵자보다야 예수가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로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고 그 내용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할만한 배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사람들이 예수에 관해 '제대로' 알고있는 것일까를 생각한다면 역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고...-.-;;; 묵자에 나타난 고대 동양 신관이 우리가 알고있는 유교적 신관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묵자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신약성경의 표현들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 흥미로왔습니다.

책을 읽고 난 감상은, 절대자에 관한 인간의 신앙이란 것이 과연 학문이 될수 있고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기세춘 선생은 묵자의 하느님은 예수의 하느님과 비슷하지만 여러 차이점들이 있고 구약의 야훼와는 전혀 다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해 문익환 홍근수 목사는 구약의 야훼나 예수의 하나님은 같으며 그것이 또한 묵자의 하느님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두 의견은 합쳐지기는 커녕 가까와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군요. 저도 이해가 되는 것이, 성경의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이해하려면 예수라는 인물에 신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그것이 학문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학문의 영역이 아닌 신앙의 문제거든요.
그리고 기세춘 선생이 구약의 야훼를 전쟁의 신, 파괴의 신이라고 이해하는 것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두 목사가 아무리 그건 그게 아니고 라고 하며 성경을 근거로 신학적 변론을 하려 해도 예수 이후의 교회사 자체가 십자군 전쟁이나 중세 암흑시대, 파괴적인 제국주의 등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그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묵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보다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름 열린 태도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특유의 배타적인 태도로 교회 밖의 종교나 사상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깨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기회로서 유익합니다. 또한 기세춘 선생의 의견에 대한 문익환, 홍근수 두 목사님의 신학적 반론들이 읽어볼만 한데, 일반적인 교회의 주일 강단에서는 듣기 힘든 신학적 통찰과 깊이있는 성경 해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내용의 독서였습니다만, 여러가지 의미로 알찬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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