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비틀즈의 박스셋이라는 놀라운 상품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저를 더 흥분시킨 물건은 "움베르토 에코 매니아 콜렉션"이었습니다. 일단 탐색전 성격으로 한 권을 구입해봤습니다. 한 열 권 정도만 돼도 일괄 구입 하여 뿌듯함을 느껴볼 만 했습니다만, 3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기획된 물건이라 사놓고 2010년은 에코와 함께, 뭐 이럴 수도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원래는 이 책을 오프라인에서 한번 구입을 했습니다만, 공교롭게도 구입 당일이 첼로팬군의 생일이었던지라;; 헛- 생일이었냐. 이거라도...식으로 제 손을 떠나버렸었지요.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레스프레소]라는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한 칼럼을 모은 것입니다. 칼럼명이 [미네르바의 성냥갑]으로 동명의 서적으로 간행되었던 것을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과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의 두 권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미네르바의 성냥갑]의 글들은 이 두 권 외에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등에도 실려있습니다. 주간지의 칼럼이기 때문에 시사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책 전체가 동일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닌 만큼 책 제목으로 내용을 한번에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책으로 천년을 사는 법]이라 하면 벌써부터 '책' 혹은 '독서'에 대한 예찬론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 내용이 맞습니다만, 책 전체가 그 내용은 아니라는 말씀. 1.책의 미래, 미래의 책, 2.진실한 말들의 고귀한 거울, 3.문학과 예술의 이삭 줍기, 4.인터넷 시대에 살아가기, 5.장엄하고 발전적인 운명, 6.닭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의 여섯개 쳅터로 나누어있으며 각각 쳅터명이 담고있는 주제들의 글들을 모아놓았습니다. 20년간 주간지에 실은 칼럼이니 얼추 계산을 해봐도 천 개 정도의 글이 실렸다는 이야기인데 그 중에 시사성이 강해 두고 읽을만하지 못하다 판단되는 글들, 이런 저런 이유로 단행본으로 묶기 어색한 글들을 추려내고 주제별로 묶어낸 것이죠.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언제나 비 일상적인 단어들과 여기 저기에서 인용해온 문구들과 생소한 이름들로 가득해서 읽기 까다롭습니다. 단어들이 줄줄 엮여 들어온다는 느낌보다 구절구절 꼭꼭 씹기 전에는 좀처럼 목구멍으로 넘어들어가질 않습니다. 게다가 말장난이 심해 글을 읽으며 번역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간혹가다가는 '이게 이탈리아어로는 무척 웃긴 표현인가보다'하며 심드렁하게 넘어가야 하는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책을 놓을 수 없고, 또 다른 책을 찾아서 읽게 되는 이유는 사물과 사건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시각과 사고방식, 그리고 한없이 유쾌한 표현방식의 매력 때문입니다.
책은 일반적인 페이퍼백보다는 좀 작게, 문고판보다는 고급스럽게 제본되어있습니다. 표지의 두께와 코팅이 고급스럽게 느껴지고 손으로 들었을 때의 느낌도 아주 좋습니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를 연상케 하는 표지 디자인도 근사하고요. 매니아 콜랙션과 이미 갖고있는 에코의 저작물들이 몇 개 겹치는데 그냥 다 구입하고싶을 만큼 만듦새가 만족스럽습니다.
덧글
gershom 2010/01/10 21:25 # 답글
에코의 책은 그냥 쉽게쉽게 읽히지는 않더군요..
아무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대충 건성으로 지나친 책이 몇 권 되어서
앞에 마주하기 조금 꺼려지네요.. ^^;
bonjo 2010/01/10 22:26 #
어려운 부분들이 발목을 잡곤 하는데 이 책은 컬럼집이라 그런지 그냥 대충 넘어가도 별 지장은 없더라고요...-.-;;; 머릿속 나사 좀 조이고 싶을 때 한권씩 추가해 볼 생각입니다.
gershom 2010/01/10 22:35 #
지하철에서 들고 읽기 너무 무겁고 가방도 무거워 져서요..
아마 열린책들이 폴 오스터 처음 소개할 즈음 상용화(?) 하지 않았나..기억이 되네요..
bonjo 2010/01/11 11:14 #
valentine 2010/01/11 10:59 # 답글
bonjo 2010/01/11 11:13 #
에코의 저작들은 깊은 예술성 속으로 들어가는 감동은 덜하지만 박물관을 꼼꼼히 살펴보며 느껴지는 통합된 감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독서 하시길 바랍니다. ^^
valentine 2010/01/14 10:38 #
심심하게 비슷한 내용의 심리학 책만 읽다가 새로운 루트를 발견 했습니다. 책 추천 감사합니다.
bonjo 2010/01/14 10:49 #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
James 2010/01/11 11:26 # 답글
저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꼭 책은 2권 정도를 기본으로 들고 다녀서 그런지 무거움에 대한 불평은 없습니다. 백팩을 사랑합니다, 저는.
제가 만약에 직장인이었으면 저 시리즈 모두 다 사버렸겠죠. 아마, 저 책들도 곧 절판될 겁니다. 도스또예프스키 전집(양장판)이 그러했던 것 처럼..저처럼 어중간하게 몇 권만 양장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새로 가볍게 나온 버전을 보면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기존에 산 것들도 다시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 페이퍼백도 잘 나오면 좋습니다!
bonjo 2010/01/11 12:29 #
절판이라고 하시니 위기의식이 엄습하는군요.
부지런히 사두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