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 문숙자 ▪ Books

사극을 통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질 법도 한 '조선의 일상사'에 관한 책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극에 통해 본 조선시대의 이야기라면 대부분 임금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왕가의 이야기이거나 왕가 혹은 왕궁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 백성들의 삶이라고 한다면 배경으로 그려지는 행인들이거나 감초격으로 등장하는 과장된 성격의 인물들이 고작이고,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면 홍길동이나 일지매 정도의 픽션 혹은 전설의 고향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 책은 노상추라고 하는 영남지방의 한 무인의 일기를 토대로 조선 영정조 시대의 (비교적)일반인들의 삶의 모습을 정리한 것입니다.노상추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 17살부터 가족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해 1762~1829년까지 68년간 거의 쉬지 않고 하루하루의 가정사와 개인사를 정리했습니다. 노상추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무관으로서의 삶을 산 양반이지만 서른 중반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지으며 가계를 돌보던 기록이 담겨있고 집안의 노비들에 관한 기록들과 경제적 상황들, 그리고 가례와 관련한 내용들이 자세히 남아있어 여러가지 사회상을 읽을 수 있게 해줍니다.

영정조 시대면 비교적 조선 후기로 아주 오래전 옛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생활상과 무척 다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혼인과 출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노상추는 평생 세 번 결혼을 하고 몇몇의 첩을 거느려 모두 12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 성인이 되어 족보에 이름을 올린 것은 고작 4명 뿐이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아내는 모두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였고 아이들도 대부분 아기때 세상을 뜹니다. 저자는 양반가의 사정이 이러한데 평민들이나 노비들의 상황을 어떠했을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냐고 코멘트를 합니다. 이 어이없는 생존률과 함께 신기한 것은 노상추에게 최소한 다섯명의 처첩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상추의 일기를 토대로 볼 때 그의 조부나 아버지에게도 최소한 한명의 첩이 있었고 할머니나 어머니도 둘째 세째 아내라는 것입니다. 남녀의 비율이 1:3~1:5가 아니고서야 이러한 혼인관계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밥먹듯 해대 남녀 비율이 무너진 시대도 아니고 말이죠.

그 외에도 과거급제가 그리 대단한 출세길이 아니라는 점-과거급제 후에도 관직을 얻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고 경제적 걱정은 계속됩니다.-, 수도권 지역과 지방의 네트웍이 아주 엉망이라는 점 등입니다. 특히 한양-지방간의 정보전달성을 보며 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싶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르러 일주일 거리를 허위허위 올라갔는데, 그해 시험과목이 바뀌었다든가 하는 일이 일반적입니다. 한양 사는 선비가 아니고서는 과거 시험과목 조차 알 수 없는 시대였던 것이죠.

내용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만, 책 자체는 흥미 본위로 저작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내용이 딱딱한 편이며 흥미만을 가지고 책을 펴든 사람이라면 약간 불친절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쉬운 것은 노상추의 일기 본문 인용이 너무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노상추의 일기에는 이러이러한 내용이 반복하여 적혀있다'라고 말을 맺을 뿐 노상추가 어떻게 적어 놓았는지 직접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아주 가끔 인용하여 보여줍니다만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없다고 해도 그만인 정도입니다. 근거가 된 일기에 관하여는 미주로 연월일을 기록해놓기는 했습니다만 본문을 갖고있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셈입니다. 물론 노상추의 일기 분량 자체가 어마어마한 것이라 그 내용을 모두 옮기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맛보기 정도의 인용은 해주는 것이 친절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책 날개에 보니 동 출판사에서 비슷한 컨셉의 역사서들이 몇 권 더 있는 것 같은데 흥미 가진 김에 구해 읽어봐야겠습니다.







덧글

  • grapy 2009/12/29 12:48 # 삭제 답글

    책보다 왠지 본조님 서평이 더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호주 책방에 갈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왜 내나라 있을때 한글로 되어있는 그 수많은 재미난 책들을 읽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많이 합니다 평소 책 자주 읽으시는 본조님이 갑자기 부러워 집니다 다시 한국 돌아 간다면
    책 많이 읽고 싶고 게임 많이 하고 싶고 - -;;요즘엔 여긴 남자들의 천국이 절대 아니구나 하는 생각만 가득합니다...;;아니다 ;;자폭님은 그들만의 리그에 잘 적응해 사십니다 ;;
  • bonjo 2009/12/29 15:59 #

    한목사님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책 빌려 읽으세요. 갖고있던 책 무지하게 싸가셨습니다.
  • grapy 2009/12/29 23:10 # 삭제 답글

    그게 지금은 한국책 읽을 때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 -;;지금은 뭘 해도 영어로 ;;
  • bonjo 2009/12/30 09:40 #

    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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