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 나츠메 소세키 / 오유리 역 ▪ Books

판타지 소설을 연거푸 읽다가, 뭔가 독서의 균형을 잡자는 생각으로 구입한 고전입니다. 고전이라고 해도 수백년 지난 작품은 아닙니다만, 20세기 초의 일본 대표작가인 나츠메 소세키입니다. 일본 지폐에도 얼굴이 실릴 정도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죠. 그럼에도 문학적 조예가 미천한 저로서는 이름만 간신히 아는 생소한 작가...-.-;; 이 책도 시골의사 박경철 님의 블로그에서 서평을 읽고 구입했습니다.

배경은 이 소설이 씌어진 1900년대 초 바로 그 당시입니다. 극중에 메이지 일왕이 사망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 대충 배경이 그려질까요. (사실 저는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습니다) 원래 이 소설이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던 것이라 배경을 설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는 없었겠죠. 신문을 읽던 독자들의 일상적 풍경 속에 주인공만 들여놓으면 되니까요. 이야기는 어떤 사건이나 스토리를 따라 흘러가는 형식은 아닙니다. 화자인 청년과 '선생님'의 관계와 그들의 대화 속에 담긴 마음의 흐름들, 그리고 화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지며, 후반부는 선생님의 아주 긴 편지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닥 드라마틱한 전개나 흐름이 없기 때문에 무척이나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감춤이 없는 사람의 감정라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드라마틱한지 느껴보는 것도 근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후반부는 선생님의 청년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액자소설의 형식입니다만, 시종일관 편지글의 문체를 벗어나지 않아 묘한 느낌을 줍니다. 전반부는 어지간히 연배 차이가 나는 청년과 노인의 담담한 관계 묘사입니다만, 후반부는 통속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름 심각한 삼각관계 스토리입니다. 전반부에 던져놓은 많은 물음표들에 후반부가 답을 달아줍니다.

그당시 사회 문화에 대해 이해가 적은 저로서는, 별다른 공식적 관계가 없는 청년과 노인이 저런 친밀한 교제관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충 젊은 유생이 덕망 높은 선비를 찾아뵙는 정도의 느낌이려나 하고 이해를 했습니다만, 역자 후기에 보니 일본 내에서도 청년이 '선생님'에게 접근하는 부분에 대해 동성애적인 암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평론이 있던 것으로 볼 때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일본인들에게도 그닥 설득력있는 관계는 아니로군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마지막에 둘다 죽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그것이 스포일링일까 아닐까 고민해야한다면 참 비참한(?)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있었던 저로서는 책 뒷표지에 써있는 여섯 줄 짜리 요약이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는 것보다 더 쇼킹했습니다. 물론 그건 전적으로 제 무식의 소치이지요...-.-; 게다가 이 [마음]이라는 제목은, 원래 나츠메 소세키의 짧막한 몇 편의 소설을 묶어 내기위한 제목이었는데, [선생님의 유언장]이 워낙 길어지면서 한 작품만 싣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선생님의 유언장]입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선생님은 죽는구나. 라는 것을 깔고 시작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반자살] 수준의 제목인 것이죠. 사실 결말은 이야기의 초반부터 대충 감이 잡힙니다. 나츠메 소세키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싶은 것은 사건의 기막힌 진행이 아니라 사건 속에 있는 인물들의 내면이니까 말이죠.






덧글

  • 荊軻 2009/10/24 00:18 # 삭제 답글

    나츠메 소세키의 책을 한 번 사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못 사보고 있군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을 한 번 사 보고 싶은데 말이죠.
  • bonjo 2009/10/24 11:10 #

    의외(?)로 무척 재미있었음. 나츠메 책 몇 권 더 사볼 계획이야.
  • 앨리스 2009/10/24 03:24 # 답글

    오랜 세월 다른 사람과 잘 교류하지 않는 선생님이었기에 청년의 접근이 나쁘지만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을 불신하는 선생님이었기에 오히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편했을 수도 있겠지요.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말을 낯선 사람에겐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요.
  • bonjo 2009/10/24 11:14 #

    사귐이 깊어져가는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요, 처음 주인공이 선생님한테 관심을 갖고 접근을 하게 된 계기가 마치 '미녀를 본 남자가 수작을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그게 아니라면 도를 찾는 젊은이가 현자에게 접근하는, 혹은 유생이 노선비를 찾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좀 스스로 납득이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도 현대사회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서는 어느쪽이든 자연스럽지는 않은... ^^;;;
  • CelloFan 2009/10/24 12:35 # 답글

    대학 1학년때 참 열심히도 일본문학작품들을 읽었는데, 저도 다음번 책지름 라인업에 다시 일본근대문학들을 넣어봐야 겠네요.
  • bonjo 2009/10/26 19:54 #

    일본 근대문학은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거 읽고 관심이 많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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