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버호벤 감독의 진한 폭력 묘사로 유명했던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를 접한 후, 게임 '스타크레프트'와의 비쥬얼의 유사성에 의혹을 갖기도 했습니다만, 영화나 게임보다도 훨씬 오래된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원작 소설의 존재를 안 다음부터 손에 들고 읽게 된 것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그 부분은 약간 우스운 것이, 인터넷 서점에서책을 고를 때마다 스타"쉽" 트루퍼스를 검색어로 넣었고, 그러면 이미 절판된 책만 리스트에 올라왔습니다. 개정판이 [스타십 트루퍼스]로 나와있다는 사실을 한참동안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죠.
아무튼 그렇게 오랜 시간 기대하며 손에 든 [스타'십' 트루퍼스]는, 요약해 말하자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영화와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만, 폴 버호벤 감독의 독창적인 시각이 그렇게 강하게 개입됐을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상에서 전체주의적인 사회상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강조해 역설적으로 비웃었다면, 하인라인의 원작에서 이야기하는 군대 중심의 사회체제는 아주 진지하게 제시되는 미래의 사회상입니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절지동물형 외계인과 기동보병의 사투보다는 주인공의 시점을 따라 고등학교, 신병 훈련소, 사관학교의 수업을 오가며 '책임과 권리가 균형잡힌' 새로운 사회 체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인라인이 주장하는 것은 비교적 간략합니다.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참정권을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된다. 개인보다는 전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한(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에게만 참정권을 부여해야한다. 는 것이지요. 참정권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그 외에는 특별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체주의와 상이점이 보입니다만, "개인보다는 전체가 중요"하다는 기본적 정신을 볼 때에는 여지 없이 '전체주의'사상입니다. 군복무를 마친 참정권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그냥 놔두리라는 것도 어쩌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말이죠.
물론 책임&의무와 권리의 균형은 공화국을 건강히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기는 합니다만-특히 군미필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총의를 이루어가는 민주공화국 이념을 생각한다면 하인라인이 주장하는 수준으로 강요될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이죠.
아무튼 그렇게, 외계인과의 피튀기는 사투를 기대했던 사람으로서는 실망스러운 독서였습니다. 다만 미래의 전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예측된 부분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납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보병이 개인화기를 들고 참여하는 부분은 어쩔수 없이 남을 것이며 전쟁이 아무리 세련되게 업그레이드 되어도 그렇게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이죠. 하인라인이 기동보병들에게 입히는 '강화장갑'은 수많은 SF 애니메이션과 영화에서 형상화되고있으며 실제로 각국의 여러 연구소에서 군용/민간용으로 개발되고있는 '입는 로봇' 형태의 발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말미의 해설 부분에도 하인라인의 정치적 이상을 비웃으면서도;; 이 강화장갑의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군요.
하인라인은 실제로 사관학교 출신의 해군 장교였으며 건강상의 이유로 퇴역한 이후 소설가로 전업을 했다고 합니다. 군인으로서의 프라이드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군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면 정치적인 부분이든 군사적인 부분이든, 납득할만한 주장들이며 설득력있는 상상이라 생각이 듭니다.
덧글
CelloFan 2009/08/24 22:53 # 답글
bonjo 2009/08/25 10:30 #
교련선생들 군복입고 학교 돌아다니는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끔찍한 일인데 말이지.
Criss 2009/08/25 00:08 # 답글
아무튼, 병역비리 의원들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하인라인에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우기고 싶습니다... -_-
bonjo 2009/08/25 10:27 #
荊軻 2009/08/25 01:54 # 삭제 답글
스타십 트루퍼스와 반대되는사상을 가진 조 홀드먼의 SF[영원한 전쟁]도 재미있었습니다.
bonjo 2009/08/25 10:24 #
여름 2009/08/26 16:04 # 답글
병역의 의무야 대체복무나 여하튼 대안이 많아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데...
납세의 의무를 무시하는 자들,세금포탈하는 것들은 도대체가...
이건 전체주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자유주의(?;표현이 저질입니다)관점에서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능...
bonjo 2009/08/26 16:26 #
focus 2009/08/27 14:57 # 답글
영화라도 봐야겠습니다.. 아직 못봤네요..;;
bonjo 2009/08/27 22:31 #
폭력과 성적인 묘사 수위를 감안하셔서 아이들 잠자리 든 뒤에 감상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