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직후부터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7쇄가 나오고서야 구입했습니다. 살까말까 망설인 이유는 크게 없습니다. 유시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호감이 있는 편인지라 책의 내용에 대한 의심은 그닥 없었습니다. 다만 쏟아져나오는 답답한 시사현안들 위에 한 짐 더 얹으려니 부담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 책이 발간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덕에 이 책도 더 많이 팔려나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유시민 하면 노무현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정치적 동지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처음에 책의 부제로 붙은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라는 부제가 부담스럽게 느낀 '한 짐 더'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면한 시사 현안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선뜻 집어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법이라면 일반 국민으로서 민법보다 멀고 형법보다도 먼 개념이라 말이지요.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헌법이야말로 국가가 국민들에게 마땅히 취해야 할 의무들, 국민들이 국가에게 요구할 권리등의 국가의 기본적 정신이 담겨있는,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2부로 나뉘어져 1부에서는 헌법의 당위에 대해, 그리고 2부에서는 유시민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이 실제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있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시민은 이 책을 통해 노무현 정부를 돌이켜 보며 헌법을 보고, 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며 헌법을 들여다 봅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부가 한 일이 헌법에 어떻게 맞는지 혹은 틀리는지 짚어보고, 이명박 정부의 하는 일에 대해서고 그렇게 합니다. 결국 서거한 노무현을 슬퍼하고 아쉬워하며, 참여정부의 정책을 되짚어보는 이에게 헌법적 근거를 쥐어주며, 또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고있는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헌법적 근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을 근거삼아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할 수도, 이명박 대통령을 옹호할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적인 법 정신을 생각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민주 공화국에 가까운, 혹은 먼 통치를 하고 있는지는 쉬운 답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글 말미에는 집중적으로 일반적으로 노무현 정권이 잘못했다고 지적되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있습니다.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 있는 정도의 해명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진정성을 이해합니다.
글은 쉽고 간결하며 좀 무리해서 나눈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게 나누어진 쳅터들 덕에 읽는 부담은 더욱 적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 생각하되 정치인이 쓴 것이라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정도로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문체도 가볍고, 스스로 [지식 소매상]이라 하듯, 사서 바로 봉지 까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단단함을 갖는 책입니다.
벌써 까마득히 지나버린 것 같지만, 오뉴월 땡볕 아래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를 치룬 이후, 이제 겨우 8월 초입니다. 별 한 것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도 무섭지만, 시간도 별로 지나가지 않았는데 무디어지려하는 가슴과 정신머리는 더더욱 무섭습니다.
덧글
여름 2009/08/05 21:25 # 답글
조요히 읽더니 별말 없었는데,
나중에 Bonjo님의 포스팅이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이랑 똑같다고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유시민 전장관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고, 복지부 장관이었습니다.
지금 평택에서 벌어지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은데 별 말씀이 없이시네요.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bonjo 2009/08/05 23:38 #
그런데 그양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책 내용중에 보면(정확한 인용을 위해 뒤적거리는데 못찾겠습니다;) 자신의 입장에 국민들의 손에 의해 퇴출되어 유배되어 있는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든 직함에 '전직'을 붙일 수 밖에 없는 입장에 뭐라 말할 부분도 적을 것 같고 뭐라 말한다고 호의를 갖고 옮겨 적어줄 매스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 뭐라 개인적 소회라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찾아보니 공식적인 언로였던 블로그도 4월 이후로는 업데이트 없이 방치된 상태네요.
제 개인적인 견해는, 쌍용차 문제는 경제적, 법적으로 언급할 단계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 보도된 협상 과정이나 오고간 대화들을 보면 사측(정부측)에는 애초에 대화로 해결할 의지가 없었거든요.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는 애초 사태를 해결하려는 태도와, 그리고 훌쩍 뛰어넘어 진압 방식에 대해 '비난'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봅니다.
CelloFan 2009/08/05 23:58 # 답글
현실정치에 대한 저술자체가 거의 전무한 이 나라에서 그의 책이 반갑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한 것 같습니다.
bonjo 2009/08/06 00:24 #
밑줄치며 공부해야 하는 내용을 파는 전문샵이 아닌 봉지 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쉬운 지식을 파는 소매상이라는 거지.
CelloFan 2009/08/06 11:45 #
bonjo 2009/08/06 11:58 #
CelloFan 2009/08/06 14:57 #
bonjo 2009/08/06 1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