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걸으멍 : 제주 걷기 여행 - 서명숙 ▪ Books

놀며, 쉬며, 걸으며, 매력적인 제목에 홀려 사버린 책입니다. 구입했을 때에는 그저 제주도 여행기나 제주도 여행 안내서 정도 되나 하며 샀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군요.

저자 서명숙은 시사저널, 오마이뉴스의 편집장을 지낸 베테랑 기자이고 지금은 시사IN의 편집위원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베테랑 기자가 여행 책이라니. 편향되지 않는 건강한 시각으로 국내 정세를 읽어주던 시사저널이 망가지면서 저자는 기자생활을 접기를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백수의 신분으로 친우들과 이곳저곳 여유로운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순례자들의 길 '산티아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산티아고를 꿈꾸게 되고 짧은 오마이뉴스 편집장 시기를 거치며 여비를 마련, 오마이뉴스를 그만두며 산티아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영국인으로부터 "돌아가면 너의 길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개하라"는 권유를 받고 자신의 고향인 제주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귀국 후 제주올레(http://www.jejuolle.org)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제주의 감추어진 길들을 하나씩 발굴해 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 서명숙이 세파에 지치고, 산티아고를 만나고, 산티아고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길을 제주에서 찾아내는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제주도라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관광명소의 지명들이 아닌, 낯선 지명에서 지명으로 이동하며 제주를 좀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는 길들을 개발하는 것이지요. 거기에 덤이라면 제주 곳곳에 묻어있는 저자의 추억들, 그리고 제주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베테랑 기자인만큼 글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깔끔한 글줄들 사이에 연륜이 쌓인 여성의 따스함도 느껴집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책이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길 위에 선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의 사진들로 가득해 분량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습니다. 책의 단점을 꼽자면, 다 읽고나니 당장 제주도로 떠나지 않으면 병이라도 나버릴 것 같군요.

에필로그에는 자신이 제주에서 길을 찾았듯이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자기의 길을 찾고있다는 이야기를 적고있습니다.
예전에 동경 근교의 고마高麗라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지명에서 읽을 수 있듯 멸망한 고구려의 왕족과 귀족들이 건너와 터전을 잡고 살아간 곳입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전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는데 역의 플렛폼 근처에 "고마의 옛 길을 걸어보세요"라는 광고판이 서 있었습니다. 늘 그 광고판을 보며 동경을 하다가 어느 한가한 주말에 용기를 냈습니다. 역으로부터 고구려 귀족들의 신을 모셨다는 고마신사高麗神社까지의 꽤 먼 시골길. 그것이 광고판에 적인 "고마의 옛 길"이었습니다. 정말로 볼 것 없이 평범한 시골길에 간간히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말뚝을 박아놓은 것 외에는 논과 밭, 그리고 농가들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돌아온 그 길은 제가 경험한 여행들 중 가장 멋진 것들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그곳 뿐 아니라 동경 근교의 몇몇 '별 볼 것 없는' 관광지들을 경험해봤습니다만, 그때 그곳이 주었던 뭔지 모를 감동들이 바로 서명숙씨가 말하는 '걷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곳 주변에 제주올레 같은 아무 멋드러진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고마 옛길 정도의 평범한 길들이 많이 개척되어 삶에 지친 사람들을 낚고;; 위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덧글

  • 여름 2009/03/16 21:37 # 답글

    어제 '1박2일'에서 소개된 올레길 등을 소개한 책이네요.
    전 책에서 읽은 작가의 소중한 경험이 내경험인양 우쭐될 때가 있는데, 책이 아닌 다른 미디어에서 처음 소개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까탈루냐찬가'처럼
    어제 1박2일의 제주도 올레길을 떨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본 기억에 반가운 마음으로 덧글을 적습니다.
  • bonjo 2009/03/16 22:56 #

    헉! 1박2일에 소개가 됐군요!!!! 어제 얼핏 지나치듯이 제주도 장면을 보기는 했는데 설마 제주올레가 소개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주올레 말고도 요즘 트렌드 중 하나가 '걷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나들이 다닐만한 코스를 소개한 책을 한 권 주문했습니다. 내용이 괜찮으면 소개해드릴께요 ^^
  • CelloFan 2009/03/16 22:25 # 답글

    으억, 강렬한 빨간색의 블로그에 어익후 눈이... 야동블로그인거 같아요.
  • bonjo 2009/03/16 22:52 #

    지난번 스킨이 폭이 너무 넓은 것 같아서 바꿔봤는데 색이 좀 그렇긴 하네...-.-;;
  • bonjo 2009/03/17 12:35 #

    기존 스킨에서 폭 조정하는 것으로 완료!
    스타일시트 조정 무지 까다롭구먼.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으로 조정성공...-.-;
  • 荊軻 2009/03/17 13:03 # 삭제 답글

    저도 시사인에서 써 놓은 서명숙 기자의 이야기를 봤습니다. 재미있더군요.

    제주도도 가 보고 싶고...무엇보다 스페인에 있는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고 싶어요.

    [카미노 데 산티아고].
  • bonjo 2009/03/17 14:01 #

    이 책 중반부가 산티아고 여행기인데, 사진으로 보니까. 으아. 너무 멋져서 몸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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