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 - 코맥 매카시 / 김시현 ▪ Books

19세기 미국 서부라는 생소한 배경. 서부 개척시대는 살짝 벗어난 듯 하고, 코맥 매카시가 그리는 19세기 서부에는 총잡이 악당, 멋진 보안관, 영화속에서 보는 낭만스러운 개척마을 풍경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악취, 오물, 누더기, 살인, 무기력, 황폐함. 사람이 죽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묘사되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독자는 이야기 속의 수많은 죽음들에 둔감해져버린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년'은 사실 주인공이 아니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 부분을 담당할 뿐 책의 대부분의 분량은 소년이 속하게 된 멕시코 정벌대와 인디언 토벌대를 따라간다. 소년이 속한 인디언 토벌대는 죽음을 몰고 다닌다. 작은 망설임도 양심에의 질문도 없다. 그저 죽이고 머릿가죽을 벗길 뿐이다. 심지어는 인디언이 아니라 하더라도 죽이고 가죽을 벗긴다. 또 죽일 뿐 아니라 죽임들 당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 매카시의 다른 소설 [The Road]의 주인공 부자가 아닌 그들이 피해다니던 식인종 약탈자들이 주인공으로 날뛰는 형국이다. 19세기이지만 충분히 세기말적이고 저러한 시대에 어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다.

매카시는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핏빛 자오선]에 묘사된 '죽음이 일상적이고 희망이라고는 없는' 곳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총을 뽑아 다른 이를 쏘는 일은 그닥 흔한 상황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모든 죽음에는 사람들과 얽힌 이유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러한 죽음들에 익숙하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가 생각을 해본다 해도 토벌대가 인디언 머릿가죽으로 바꾼 돈으로 먹고 즐기는 한바탕 소란 정도를 바라며 우리도 동일하게 혹은 약간은 고상한 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에는 19세기의 맥시코 국경지대라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으나 역시 매카시. 아주 작은 사물이나 사람들의 차림새 행동의 묘사로 독자를 19세가 맥시코 국경지대로 끌고 간다. 작은 묘사들 속에 주인공이 휘청휘청 걸어가고 글린턴 대위가, 판사가 피 비린내 나는 살육을 벌인다.
[핏빛 자오선]은 지난번 꽤 매끄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모두 다 예쁜 말들]과 동일한 번역자인데 지난번보다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문장이 꼬여있거나 뭔가 생략된 부분들이 많았다. 역자 후기를 읽어보니 맥카시의 다른 책들에 비해 [핏빛 자오선]은 시적인 문체로 써있고 문장이 어려운 편에 속해 번역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하고있다. 역자의 겸손과 달리 문장은 아주 껄끄럽지는 않고 읽는데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읽어야 하는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문장 구조가 꼬이거나 생략된 부분들이 시적이라 표현된 부분인 듯 한데, 생략된 그리고 시적이라고 해도 맥카시의 표현이 워낙 건조한 편이고 번역자도 그것을 잘 번역해준 것 같다. 같은 번역자가 매카시의 소설을 두 권 더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덧글

  • CelloFan 2008/12/23 09:49 # 답글

    전 아직 핏빛 자오선 시작도 못했습니다. 11월중순부터 읽는 꼬부랑 글씨 경제학책 하나가 정말 오래가네요. 저도 한번 잡은 책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을 봐야 다음 책으로 넘가는데... 벌써 2번이나 걍 덮을까 생각했슴다. 생일때 주위 분들이 책을 몇권 주신것도 있는데, 음... 큰일임다 ㅎㅎ.
  • bonjo 2008/12/23 10:52 #

    걍 덮어;;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