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행 - 니코스 카잔차키스 ▪ Books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영국에 머물며 영국의 역사, 문화, 종교, 사상, 사회를 깊숙히 탐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탐구하는 목적은 그 자체를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 너머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이 책은 틀림없이 여행기이지만 객관적 풍광이나 겉모습에는 무관심하다. 1939년 영국의 거리를 걷고 그 시대 전쟁의 공포속에 있는 영국인들과 대화를 하지만 카잔차키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1939년의 영국이 아니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여행지의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던 그 '무엇'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그러했듯, 카잔차키스의 영원한 테마는 자유이다. 이 책에서도 영국의 신사도, 마그나카르타, 세익스피어를 통해 자유를 이야기한다. 특히나 이 여행의 테마 자체가 세익스피어인지라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글임에 비하여는 한 개인인 세익스피어에 관한 글의 비중이 비교적 크다. 카잔차키스는 세익스피어를 영국의 모든 특성을 모아 자유라는 자화상을 그려낸 위대한 영혼으로 묘사를 한다

[영국 기행]에서 보여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같은 느낌이다. 수사가 화려하고 강렬하다. 문장 구조가 복잡한듯 보이나 말하려 하는 바에 대하여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조르바의 투박한 어투와 단순 우직한 가치관 때문에 시원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풍겼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필치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라 책을 읽으며 몹시 당황스럽기도 했다. 

머리 복잡한 가운데 읽어서 그런지 뭘 읽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오래 걸리기도 무척 오래 걸렸다. 컨디션이 좀 나은 날에는 또렷이 잘 읽혀지고 그렇지 못한 날은 무엇을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이러한 편차를 보면 틀림없이 번역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카잔차키스의 작품 중 [영국 기행] 외에도 여러 나라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다. 하나씩 섭취를 해 볼 계획이다.

'열린책들'의 카잔차키스 전집이 모두 동일한 편집으로 되어있는지 모르겠는데, 페이지 테두리 여백이 좀 좁은 편이다. 다른 책들의 넓은 여백을 보며 지면 낭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책 속 세상과 내가 서 있는 리얼 월드와의 경계선이다. 이게 좁으니까 책속으로 깊숙히 빠지는데 무척 방해가 된다.


아무튼, Cellofan,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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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elloFan 2008/12/13 00:56 # 답글

    이상하게 저는 한번에 읽히는 책들은 나중에 다시 안읽게 되요. 한번에 안 읽혀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들이 많은, 그리고 나를 책속의 논쟁속으로 끌어들이는 책들을 계속 곁에 두고 읽게 되는 것 같아요. 머... 그렇지만, 만화책이 젤로 좋다능. 베르세르크 안나온다는 소문이 있더만요. T_T
  • bonjo 2008/12/13 02:04 #

    아무래도 휙휙 읽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이 필요 없다는 뜻이니 왠만큼(만화책 만큼) 재미있지 않고는 손이다시 가는 일이 적지 않을까?

    베르세르크라...오래간만에 뜬 잡지 스캔본 하나 구해 봤는데 그것도 오래전 것인가... -.-;;;
  • 荊軻 2008/12/14 11:37 # 삭제 답글

    [기독교적 마초주의]라고 불러드릴까나요.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다보면 붉은 머플러를 나부끼고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십자가를 든 남자가 생각나서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그 정서를 좋아합니다만 카잔차키스는 극단적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 bonjo 2008/12/14 19:49 #

    마초이즘이랄까...그 당시만 해도 여성이 한 인격으로 존중받기 이전이 아닌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에 대놓고 반대입장 아닌가...카잔차키스 읽어본 것이 달랑 두 권이라 뭐라 정의하는건 어불성설인데;;잠정적으로 나름 정리된 것과 반대되는 정의를 만나니 좀당황스럽고만...;;;
  • 荊軻 2008/12/15 11:03 # 삭제

    사실 저도 카잔차키스를 많이 보질 못했는데...
    이 양반이 완전히 탈기독을 했는지는 의문스러워요.

    아니면 제가 이 사람의 책을 보고 [은혜]를 받은 걸까요...-.-;;;
  • bonjo 2008/12/15 11:43 #

    종교적인 부분은 워낙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다보니 기독교의 정신은 인정하되 기독교의 형식은 대부분 부정하는 형식인 것 같아. (내가 본 바로는 말이지) 어쩌면 그런 태도가 세상 사람들의 기독교보다 합리성이나 도덕성에 있어서 우월함을 확보할 수도 있겠지.

    사실 나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구원'을 보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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